투표 불참을 옹호하며

전국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투표권 행사를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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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나의 투표권은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경합주에 살고있다면 어쩔 수 없이 조 바이든에게 표를 기여하겠지만 그리하지 않을 이들과도 공감한다. 내 기준을 충족하는 후보가 없으니 나는 투표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가?

 

무엇이 도널드 트럼프를 만들었는가? 그는 현 미국 신자유주의의 문제들의 증상이 들어난 증거이다. 신자유주의는 전 대통령들인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부시 부자, 버락 오바마와 연관이 있으며 1970년대부터 미국의 통치철학이었다. 유일한 문제는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신조는 아웃소싱, 민영화, 긴축, 규제완화를 포함한다. 로널드 레이건은 부자들을 위한 감세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감세애 대한 혜택은 “낙수효과”로 돌아 올 거라며 노조를 공격했다. 빌 클린턴은 NAFTA에 서명하여 아웃소싱으로도 알려진 “자유 무역”을 촉진하고, 또 다른 큰 불황을 막기 위해 1933년에 통과되었던 은행에 관한 규정인 Glass Steagall 법(금융업 종간 상호 규제 법안)을 폐지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미국의 임금 상승은 중단되었고, 중산층은 줄어들고 있으며, 전 미주 지역에서 제조업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반면에, 교육·의료·주택비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까지도 지역 부채만이 계속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신용 버블이 붕괴되면서 전례 없는 혼란이 발생했을때도, 미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엄청난 자금 지원으로 대응했다. 미 국민들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고, 언론과 정부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다. 내 가족 내에도 있는 투표 거부자들은, 정부가 너무 부패해서 자신들을 도울 수 없으며 언론은 거짓말쟁이라고 믿는다. 

 

바로 여기에 트럼프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얘기했다. 정치인으로서의 배경이 없고, 버락 오바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 산업 일자리를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무역에 관한 트럼프의 입장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적 합의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는 미국인들의 삶의 비참함의 책임이 그들이 불신하는 언론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선거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은 미국이 더 이상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호응 받았다. 트럼프가 현 대통령이 된 이유는 사양화된 제조업 지대(Rust Belt)의 유권자 집단 때문이다. 이들은 2012년 버락 오바마에게 투표했지만, 2016년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잃은 일자리와 망가진 신뢰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현 2020년의 문제는 이것이다. 바이든은 현 신자유주의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실 그는 오바마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이든은 오바마 시절로의 복귀를 표명한다. 그는 제조업 일자리를 되찾거나 지난 50년간의 비참한 정책들 중 아무 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잠재적 기부자들에게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고 약속했으나, 지금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변화가 있을 때까지 우리는 2016년 이전에 갇히게 되거나 더 안좋은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2008 – 2016년의 기간을 되풀이하게 된다는게 두렵다. 사회 내 불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실질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없는 정치상황에 대해 걱정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비록 그에게 투표하는 것이 트럼프를 낙선시키겠지만, 바이든은 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고, 11월에 누가 이기든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신자유주의 정치인이다. 그는 트럼프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아니며, 나란히 그들을 검토해보면, 그들은 겉보기만 다른, 같은 자질의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맞대응하는 것 처럼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실질적 선택은 존재 하지 않는다. 트럼프에 대한 모든 비판들은, 정도는 덜 할지라도, 바이든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기 쉽다. 언론은 트럼프가 난민 자녀들을 우리에 가둬 놓는다고 말한다. 그 우리들이 지어지고 있을때는 오바마와 바이든이 임기중이었다.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보내지는 비동반 미성년자들은 대부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에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지도를 보면, 거의 모든 나라가 미국의 주요 개입을 받았다. 온두라스를 제외한 나라들은 미국이 United Fruit Company(현 Chiquita)의 요청에 따라 살인적인 독재자를 지지하고 임명한 후에 폭력에 잠겼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민과 난민 아동 토론의 전체적 틀은 불완전하다. 우리는 이 문제의 근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이민 정책’에 대한 관료적 개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실질적인 논의가 아니기에, 바이든도 트럼프도 실질적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보험 의료, 일자리, 또는 이전에 내가 이야기한 미국의 쇠퇴에 관한 소름 끼치는 경향을 뒤바꾸는 것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진정한 토론을 하지 않는다. 이민 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은 극단적이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는다. 후보들의 말이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살펴봐야 한다. 오바마-바이든에 대한 진실은 그들이 무모한 외교 정책을 계속하고 중동 민간인들에게 무인 항공기 공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다른 어떤 대통령 때보다 더 많은 이민자들이 추방당했다. 트럼프와 오바마 둘 다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이 주제에 대해선 오바마-바이든과 트럼프의 거리는 멀지 않아 보인다. 비록 내가 이 현상에 해당되는 다른 많은 문제들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회자되는 대부분의 행정부 행동을 연구하는 데 거론되는 주제다. 각 행정부의 행동을 보면, 그들의 차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마케팅만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통령 임기 초 의회에서의 압도적 다수와 그가 한 모든 약속에도 불구하고, 버락 오바마는 많은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Politifact은 오바마가 지키지 않은 공약을 목록을 7장 정도나 보유하고 있다. 그는 관타나모 만을 폐쇄하거나 인신 보호법을 복원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오바마 시절의 반복은 미국의 망가진 부분들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을 것이며,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 그의 약속은 브랜딩 연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바이든은 애초에 약속조차 않기에 그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훨씬 적다. 그는 해결책이 아니다. 

 

미투표 수치심에 관한 진실

 

이 나라의 많은 국민이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누가 공직에 있던지 간에 특정한 원칙과 경향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오바마의 선거 운동의 에너지는 변화의 약속 때문이었고, 그 변화가 오지 않아 절망감만이 커졌다.

 

미투표에 대해 수치심을 주는 것은 결국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미투표자들을 무시하고 조롱함으로써 문제는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책은 정치인들의 결점을 간과하고 국민들을 나쁘게 말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기에, 근본적인 결점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우리 나라의 거대한 구조적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기된 문제들은 언젠가는 해결되어야만 한다. 미투표에 대한 질책은 미투표자들을 탓하거나 비난하기만 하고 왜 그들이 정치인이나 정당에 관심을 두지 않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기 때문에 역효과이다. 우리가 해마다 덜 나쁜 쪽에 투표하기보다 두 정당의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지게 했다면, 상황은 절대로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투표 거부자에 대한 질책이 우리를 난장판으로 밀어넣었고, 이 나라의 엄청난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누가 취임하던간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를 국가 파시즘의 위험에 빠뜨린 것은 바로 미투표에 대한 질책이다. 개인의 실패를 검토하고 접근 방식을 개선하는 대신 유권자를 비난하는 것은 패배하길 바라는 것과 같다.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캠페인은 대중의 의견이 보험 의료에 찬성하고 무역 거래에 반대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현상과는 발산된다. 사람들은 사회보장제도를 좋아하고 끝없는 전쟁을 싫어한다. 바이든은 신자유주의를 전형적으로 나타내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던 모르던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한다. 만약 당신이 비투표자들이 투표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변화를 제안해야한다. 말하는 바와 모순되는 기록을 소유하지 않고, 공약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유권자들을 설득해야한다. 바이든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불확실한 미래

 

트럼프가 이기던 바이든이 이기던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물론 바이러스는 염려되지만, 바이러스에 인해 촉발된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어느 후보도 이 순간을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바이든이 이긴다면 우리를 오바마 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고, 재정 여파의 규모와 이 위기와 CARES 법의 부의 분배 변화는 훨씬 더 큰 문제이다. 이 일의 결과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더 많은 절망과 불행을 마주할 것이다. 민주당원들은 이 문제를 주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공화당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미 이 재난을 완화하는데 필요한 변화를 불러올 기회를 놓쳤는데, 우리는 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

 

Joseph Ellis는 이메일 [email protected] 를 통해 연락 가능하다.

한국어 번역에 김세린(Sarah Selin Kim)은 이메일 [email protected] 를 통해 연락 가능하다.

한국어 편집에 권우성(Wooseong Kwon)은 이메일 [email protected] 를 통해 연락 가능하다.